입맛이 서구화되고 간편한 식생활을 추구하면서 우리 고유의 밑반찬들이 식탁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가공식품이 많지 않았던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던 밑반찬은 이제 무엇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전주시 중화산동 한 건물 작업장에는 머리수건과 앞치마를 곱게 두르시고 뜨거운 기름에 김부침을 튀겨내는 사람이 있다. 한 입 메어먹으면 고소하고 바삭한 그 맛에 밥 한공기를 뚝딱 비울 것 같은 ‘김부각’을 만드는 최복남(여·78), 김귀선(여·76)씨다. 이들은 서원시니어클럽에서 마련한 노인일자리 사업에서 ‘김부각’ ‘감자 부각’등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김부각이란 김에 다시마 국물과 마늘 등으로 맛을 낸 찹쌀풀을 볕 좋은 날 곱게 발라 말려 튀긴 전통 밑반찬이다. 최근 참살이 음식으로 이곳저곳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김부각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시중에선 쉽게 맛 볼 기회가 없다.
최씨는 “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물 2와 찹쌀가루를 1대 1일 비율로 섞어 튀김옷을 입혀, 상온에 말린 다음 200℃ 기름으로 튀겨낸다”며 “요즘 집에서 이런 것들을 하기 번거롭고 귀찮아 사라져 간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김부각은 오염되지 않은 바다 속에서 자라는 영양소 가득한 해조류로 만들었다”며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고 칼로리가 거의 없어 성인병과 비만예방에 으뜸식품”이라고 자랑했다.
서원시니어클럽의 김부각은 특유의 짭짤하고 고소한 맛으로 전국에서 인기다. 특히 사찰에서 금하는 고춧가루 등 오신채가 첨가되지 않아 금산사, 선운사 등은 서원시니어 클럽 단골 고객이다. 이 같은 김부각의 인기비결은 다시마 국물에 첨가하는 특제 비법 육수에 있다. 김씨는 “냉면집을 하셨던 친정어머니로부터 배운 노하우로 육수를 만들어 다른 곳과는 차별을 뒀다”며 “노년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손이 만들어 내는 제품이라 더 고소하고, 담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라져 가는 전통 밑반찬을 만들어 보자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세상의 편견에 막혀 판로를 개척하기 쉽지 않았다. 최씨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노인정에서 소일거리로 만들어 파는 걸로 알고 무시했었다”며 “우리는 맛있는 먹거리를 만드는 전문 직업인이라는 사명감을 단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와 김씨는 김부각을 만들어 팔면서 일정 수입이 생겼다. 최씨는 “나이들어 자식들한테 기대지 않아 좋다”며 “여유가 생겨 손주들 장난감도 사줄 수 있고, 자식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어 노후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수입의 일정부분은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며 “내가 일을해서 번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 차별없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200℃가 넘는 뜨거운 기름통 앞에서 연신 말린 ‘김’들을 튀겨내는 최씨와 김씨의 이마는 어느새 땀으로 가득했다. 최씨는 “아침을 먹고 어딘가에 일하러 나간다는 것 자체가 삶에 활력이 된다”며 “일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사라져 가는 전통반찬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좋고, 노년에 용돈벌이도 돼 1석 3조다”고 말했다. 김씨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주위에 노년을 위한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병진 기자 mars@sjbnews.com

■ 시니어클럽이란?
경제일선에서 은퇴한 노인들에게 경륜과 경험에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참여와 소득창출을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창출사업’ 단체다.
시니어클럽은 세대통합의 지역공동체 형성, 노인일자리 전담기관으로 직무적성을 고려한 맞춤형 일자리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도내에선 9개의 시니어클럽이 운영되고 있다.
각 시니어클럽마다 사업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시장형 사업(볼펜포장, 식품제조판매, 구두관리 서비스), 인력파견형 사업(아기돌보미, 경비원) 등이 있다.